나에게 쿠바 하바나에서의 사진은 이렇게 까맣다.
내가 본 모습을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거든.
만원버스, 아니 쿠바는 항상 만원버스니까 그냥 버스에 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어.
그 버스에 타게 된것은 딱 3천원 아껴보자고 택시대신 탄건데,
중고로 산 8만원짜리 카메라를 잃어버렸네.
그래도 그 60원 짜리 버스는 어느 친절한 아저씨 덕에 공짜로 탔으니,
실 손실액은 79,940원인가;;
여행하는 사람들은 잘 알거야.
카메라의 가치보다는 찍어둔 사진에 대한 가치를...
수 많은 세계여행을 하면서, 아니 태어나서 처음 뭔가를 소매치기 당한것이 하필 카메라라니...
그것도 다시 가기 힘든 쿠바에서라니...
그래도 그로 인해 앞으로 더 조심스러운 여행을 하게 될테니 고맙다.
이제 필름카메라를 들고갈 지, 디카를 들고갈 지 고민 안하게 해줘서 고맙다.
쿠바에서 여권을 잃어버렸으면 유치장에 갈텐데, 다행히 카메라만 가져가 줘서 고맙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꼭 많이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줘서 고맙다.
아바나에서 본 모든것을 내 머릿속에만 간직하게 해줘서 고맙다.
.
.
사진을 위해 다시한번 그 곳에 갈 수밖에 없는 기회를 주는것 같아서 너무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