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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나의 이야기/브런치 2020. 8. 23. 22:58
누군가의 커피를 꼭 이기려고 생각했다면
그러니까 커피는 순위가 있는 경기라 생각했다면
난 아마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언제나 승부의 세계는 치열할 수밖에 없고 그곳에서 밀리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할 내 성격상 쉽게 떨어져 나갔을 테니까.
아마 어느 정도는 좋은 성적을 냈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밀려 나갔을 것이고 결국 짜증을 내며 접었을 내 자신이 금방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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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달리기도 그랬다.
처음엔 남들은 저렇게 멀리 또 빠르게 뛰는데 난 도대체 뭘까 싶었다.
그래서 속도가 안 나면 더 무리해서 달렸고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은 사실이 있었다.
그렇게 '승부의 세계'에서 달리다가는 분명히 곧 흥미를 잃을 것이고 난 영원히 패배자로만 기록된 채 이곳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을.
5킬로를 제대로 달리지 못하면 화가 났고, 4분대로 못 뛰면 나 자신이 바보 같다고 자책하는 나를 봤으니까.
다행히 이젠 그렇지 않지만 특히 오늘 러닝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것은 달리기도 커피도 단지 내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것.
항상 내가 생각한 수준까지만 하면 되는 것들이다.
그것도 간혹 뜻대로 안 될 때는 조금 쉬어가면 되는 거고 그래도 안되면 그냥 거기까지만 하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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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달리기도 그랬다.
중간에 욕심을 내서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뛰면 충분히 4분대 진입이 될 것도 같았거든.
그렇지만 난 같은 페이스로 즐기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다 각자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때로는 내가 그들을 따라잡아도 혹은 누군가 나를 추월해가도 마음이 편안했다.
달리기도 커피처럼 순위가 있는 승부의 세계가 아니었기에, 그저 자신과의 승부였기에 모두 다 즐거웠고 모두가 승자로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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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몇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늘 재미있는 커피.
달리기도 이제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커피처럼 누군가를 '이기려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각자의 페이스로 '함께 가는 대상'이라 생각하면 어떤 것도 오래 즐기며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글은 브런치 플랫폼에 올린 뒤 제 블로그에도 남겨두기 위해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원본을 보시려면 브런치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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