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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전 두 개뿐.
    나의 이야기/브런치 2020. 7. 23. 12:09

    해외에 있을 때는 항상 동전지갑이 필요다.


    동전 가치가 꽤 높아서 우리나라 돈 3천 원급에 해당하는 2유로 같은 동전이 많이 유통되기도 하 무엇보다 카드 사용이 많지 않아서 물건 하나  때마다 주머니가 무거울 정도로 동전이 쌓여버렸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사실상 동전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카드나 각종 페이로 백 원 이하도 결제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거추장스럽게 동전을 지니고 다니려 하지 않는다.


    물론 옛날 같으면 자판기 커피라도 하나 마시려 백 원짜리 두 개는 가지고 다녀야 했으며 좀 더 올드하게 '라떼'시절로 올라가 보면 급히 전화라도 한 통 걸려면 공중전화비용 20원도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당시 윤종신이 객원가수였던 공일오비의 띵곡인 '텅 빈 거리에서' 에는 "야윈 두 손에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도 있지 않은가 -_-)


    어쨌거나 동전이 없는 시대에 살면서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한 가지 안타까움이 있었으니 동전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런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종 나는 커피 작업실이 있는 을지로3가에서 도보로 광화문에 들러 종로3가를 거쳐서 다시 을지로로 돌아오곤 한다.
    일단 을지로는 워낙 힙한 거리라 아무 생각 없이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고 광화문이야 말할 것 없는 도심의 중심부라서 번쩍번쩍한 빌딩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친다.


    하지만 종각을 지나 종로3가에 접어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탑골공원 즈음부터는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분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는데 정확히 말하서 그곳부터는 노숙자 분들을 비롯해서 구걸을 하는 분들이나 약간 마음의 병이 있어 보이는 분들까지 소위 말하는 '불쌍한 분들'이 길거리에 많이 계신다.


    이럴 때 동전이라도 가지고 다니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몇백 원씩 올려놓고 지나가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이는데 요즘 같은 때에는 동전은 물론이고 지폐조차 없을 때가 대부분이라 어찌 방법이 없다.


    그저 편견일지 모르지만 삶이 아주 힘들어 보이는 눈으로 손만 처량하게 내밀고 계신 분들 사이를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는 것도 괴롭고 마음이 아프다고 할까. 

     

    오늘도 지나가는 길에 연세가 아주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비에 젖은 넓은 도로 한가운데에 힘겹게 앉아 다.
    요즘 집단 무료급식도 기 힘들어진 시대가 되어 더 갈 곳이 없으셨던 것은 아닐지. 마스크는 물론이고 식사 한 끼 드실 형편이 안되실 것 같은 축 처진 어깨가 신경 쓰인다.


    지나치며 내 주머니를 툭 쳐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못 본 척 지나쳐갔는데 걸어가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저 멀리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가방을 뒤져봤다.

    다행히 장지갑 속에 언제 넣어뒀는지 모를 지폐 몇 개가 있다.
    조용히  장 꺼내 들고 마치 원래 가던 길이었던 것처럼 뒤로 돌아서 슬쩍 놓고 간다. 

    시나마 미소를 보여주신다.


     


    나는 원래 기부 많이 해본 적은 없다.물론 계겠지만 기부 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꼈으니까.

    게다가 잊힐만하면 한 번씩 들려오는 유명 기부재단의 잘못된 행태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하고 살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기부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누군가에게 백 원이라도 직접 주는 것은 좋았다.

    일종의 다이렉트 트레이딩?! (결국 는 커피 다이렉트 트리이딩으로 먹고사람이 된 것인가! )


    아마 어릴 때 아빠가 보여줬던 행동이 무의식 중에 내 가슴속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군 출신이던 아빠는 늘 근검절약을 강조하셨다. (물론 나는 펑펑 쓰고 다녔지만 ㅎㅎ) 

    하지만 유일하게 어린 내 모습에 비추어진 아빠가 돈을 자주 쓰는 장면은 문판매원이 오면 아낌없이 볼펜이나 효자손 같은 쓸 데 없어 보이는 물건을 하나씩 사셨다는 것이다.


    물론 필요에 의해 산 것도 많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왜 항상 저런 것을 사서 모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 유일한 아빠와의 여행이었던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기차역 주변에서 하나 없는 다리로 바닥을 끌고 지나가시는 분에게  주머니 속에 동전을 털어서 주시는 모습다.


    당시 어린 내 생각으로 '나에게나 주지 왜 저분에게 드릴까'하는 의문을 품은 채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이제 조금이나마  의문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동전 하나의 '정 '(情)


    어찌 보면 열심히 모아봐야 커피 한 잔 사마시 기도 힘든 돈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돈일지 모르는 그 동전.

    하지만 이 동전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는 정(情)이라는 엔진이 붙어서 작지만 큰 힘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깟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 큰 기부라도 한 것인 양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부라는 것은 꼭 어떤 기관을 통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안 한다고 비난받을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해외에서는 우리가 맛있게 마실 커피를 키워주는 농부들을 위한 일을 해볼 거고 여기서는 또 내 주변에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 살겠다는 의지를 기록해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좀 더 큰 꿈을 적어보자면 언젠가 '커피  ' 마시는 일은 꿈도 꾸기 힘든 분들께 언제라도 편하게 무료로 드실 수 있는 그런 공간 꾸며서 힙한 청년들이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그리고 희망이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앉아 있는 분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 세상은 제 아무리 고단한 삶이었어도 괜찮다. 커피 한 잔이 10분간의 천국으로 안내할 테니. 


    그래서 우선 나는 한동안 쓰지 않았던 동전지갑을 가방에 하나 챙겨 넣기로 한다.

     

     

     

    이 글은 브런치 플랫폼에 올린 뒤 제 블로그에도 남겨두기 위해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원본을 보시려면 브런치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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